정선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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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엽에는 평창군 화암면 관할로 있었으나, 1906년 평창군에서 정선군으로 편입되면서 신화암면이란 지명을 갖게 되었다. 1950년 광산개발로 상주인구가 차츰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 에너지 파동으로 인해 석탄소요량이 늘어나자 인구도 급격히 증가하면서 신화암면이 신동읍으로 승격되었다. 현재에는 석탄합리화방침에 따라 지역의 모든 활동이 축소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총 면 적 : 213.56㎢

  인 구 : 13,237명

  가 구 수 : 4,273호

  농 가 수 : 1,061호

  경지면적 : 1,503ha

 
  • 봉양리

    봉양리 (鳳陽里) 리명(里名)은 光武10년 지방행정구역 구획 때에 상동, 중동, 하동의 3동을 합쳐 봉양리라 칭하였다. 즉 비봉산과 조양강에서 연유한 명칭이고 관음, 세대, 생탄을 봉양리에 통합하였다.

  • 녹두섬

    옛날 지금의 상수도 취수탑 부근 여울목에 작은 산이 놓여 현재의 봉양 7리 적거리 마을과 연결되었고, 조양강은 애산2리 구미마을 앞과 애산1리 신촌방향으로 흘러 구영소로 흘러갔는데 대홍수가 일어나 산이 떠내려가 충북 단양의 도담삼봉이 되었던 바, 정선사람들이 단양에 가서 지세를 받아 왔다고 한다. 그리고 물이 현재의 방향으로 흘러 그 사이가 섬이 되었는데 이를 녹두섬이라고 칭하였다. 현재의 봉양초등학교 부지가 봉양리 1번지로 되어 있으며, 철도가 들어오기 전에는 이곳에 변씨 소유의 밤나무 밭이 있었으며 소규모 간이 비행장도 있었고, 5·16후 국토건설대가 이곳에 머물며 철도건설에 참여하였다. 정선선 철도가 들어오며 인구가 급증하여 현재 봉양 5, 8, 9 애산 2.5리 5개 행정리가 있으며, 정선 제사공장과 벽지공장이 있는 등 정선읍의 산업 공장지대가 되었다.

  • 북실리(北實里)

    옛날에는 죽실리(竹實里)라 하였는데, 죽실이라고 한 것이 정선읍 뒷산이 봉황산이고 봉황새는 죽실을 먹고 살기 때문에 죽실리라 하였다 한다. 지금은 지세가 북으로 향하고 있다고 해서 북실리로 개칭되어 불리고 있다.

  • 광하리(廣河里)

    행정구역으로 정선읍에 속하며, 자연부락으로 광석, 상평, 송단, 여곡, 소탄, 마전, 망하, 앞골, 군언, 모평 등 10개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었으며, 리명(里名)은 광석(廣石)과 망하(望河)에서 따서 광하라 하였다. 현재 행정리 수 2개리로 농가 200여호가 살고 있는 농촌지역이다. 이 중 망하부락은 최씨의 중조(中祖)인 時鵬씨가 이주하여 황무지를 개간하여 거주하였으며, 이 지역은 석회암지대로 지하수가 전혀 솟지 않아 모든 하천은 건천(乾川)으로 물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논은 전혀 없고 오로지 밭농사에만 의존하고 있다. 본 부락은 일제때부터 정선관문으로 시범농촌갱생부락으로 선정되어 뽕밭을 조성하여 잠업이 융성하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1970년도 취락구조 개선사업으로 생활양식에 있어 일대혁신을 가져 왔으며 1985년 3월 간이상수도 공사를 관·민 일체가 되어 1986년 1월에 통수하여 충분한 식수를 공급받게 되었다.

  • 귤암리(橘岩里)

    귤암리는 자연부락으로 상귤화, 하귤화, 의암, 동무지, 월포, 만지산 등으로 형성되었으며 리명(里名)은 귤화와 의암에서 한 자씩 따서 귤암이라 하였다. 귤화는 옛날 봄철이면 귤꽃이 만발하여 귤화(橘花)라 하였고, 동무지는 옛날에 선동(仙童)이 내려와 춤추고 놀던 곳이라 하여 동무지(童舞地)라 하였다 한다. 의암(衣岩)은 옛날 이 마을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무명장수가 이 곳에서 무명보따리를 벗어 놓고 쉬다가 일어나려니 무명짐이 붙어 떨어지지 않기에 무명을 한자락 잘라 이 바위에 걸어 놓았더니 짐이 떨어졌고 이후 장사도 잘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바위에 옷을 만들어 입혔더니 마을이 모두 부자로 잘 살게 되었으나, 바위 윗편 굴속에 이무기가 살고 있다 하여 한 포수가 그 굴에다가 총을 쏘았다 한다. 그랬더니 뇌성병력과 함께 이 바위가 쓰러졌고 그 이후 이 마을은 차차 가난한 마을로 변하였다고 한다.

  • 가수리(佳水里)

    가수리는 수매, 북대, 갈매, 가탄, 유지, 하매 등 6개의 자연부락으로 되어 있다. 수매는 자연경관과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아름다워 붙인 지명이고 북대(北垈)는 북쪽을 향하여 마을이 형성되어 부른 지명이다. 갈매(渴매)는 앞에 큰 강물이 흐르고 있으나 부락 내에는 전혀 물이 없는 마을이므로 갈매라 하였고, 가탄(佳灘)은 부락앞 여울에 흐르는 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주변 자연경관과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여울을 지닌 동리라 이름지었다. 유지(油地)는 가수리에서 가장 기름진 땅을 가지고 있어 붙인 이름이고, 하매(下매)는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부락으로 기암절벽과 흐르는 강물이 아름다워 하류의 강물이 아름답다고 붙인 이름이다. 가수리란 지명도 아름다운 강물이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애산리(愛山里)

    애산리는 조선 중엽 부락 앞에 愛山亭이라는 정자각이 있어 애산리라 하였다. 자연부락중 '병목'은 마을 지형이 병 모가지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지었고, 마을앞 어천(漁川)은 마을 앞산이 비봉산인데 봉황새가 날아와 오촌(梧村)에 깃들인다고 하여 오천이라 하였는데 점차 발음이 변경되어 어천이라 하였다. 철미산(鐵美山)은 후삼국때 궁예의 부하장수 철미가 산꼭대기에 성을 쌓고 진을 쳤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구미동(九尾洞)은 조양강과 녹두섬 대안의 삼각지대로서 지형이 물가 한쪽 굽을 이루고 있다 하여 굼이라 하던 것이 발음이 변하여 구미동이라 부른다.

  • 신월리(新月里)

    신월리는 신치마을과 월통마을의 글자를 빌어 이름지었다. 조선시대에는 東下面에 속하였다가 광무 10년에 정선면에 편입되었으며, 와평(瓦坪), 들음터(野陰垈)의 자연부락이 있다.
    이 마을은 옛날에는 장수촌이라 불리웠으며 산간지역치고는 들이 넓고 관개용수도 잘되어 논이 많으며, 또한 기와집이 많아 와평이라 불리었다. 드름터, 신치, 월통 등의 자연부락도 있다.

  • 덕송리(德松里)

    이곳은 옛날 향교의 문묘가 있던 곳으로 덕을 연마하고 제사를 드리던 곳이라 하여 납덕골이라 하였다. 그리고 송오리(松五里)는 월천(月川)진산인 장등(長嶝)의 층암절벽 밑에서 시작하여 붕어소(沼)까지 약 2㎞나 되는 강소(江沼)로 양안의 경치가 아름답고 고기가 많아 사시사철 소풍객과 낚시꾼이 모여드는 명소로, 소(沼)가 5리나 된다 하여 沼五里라 부르던 것이 松五里로 변하였다. 납덕골과 송오리의 글자를 빌어 덕송리라 부르게 되었다.

  • 덕우리(德雨里)

    이 마을의 자연부락으로는 대촌(大村), 유천(柳川), 백오담(白烏潭), 덕산기(德山基), 거어리 등의 부락이 있다. 유천 마을은 그곳에 큰 연못이 있어 못 주위에 버드나무가 울창했다 하여 이름 지어졌고, 그 못가에서 흰 까마귀가 날아와 놀던 골이라 하여 백오담(白五潭)으로 변하여 불리었다. 덕우리의 이름은 덕산기와 백우담에서 글자를 빌어 지어졌다.

  • 용탄리(龍灘里)

    용탄리는 조선시대에는 서하면에, 그 후 광무 10년에는 서면에 속했던 곳으로 1924년 서면이 정선면에 합병됨에 따라 정선읍 관내가 되었다. 현재는 조양강다리를 기준으로 좌측은 용탄2리, 우측은 용탄1리 구획되었으며, 내외벽탄, 월평, 이평, 세곡, 비룡동, 행매동등 10여개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비룡동과 벽탄에서 이름을 빌어 용탄이라 하였는데 강이 웅장하고 또한 유유히 흘러 내려가 물줄기가 힘차다고 해서 용탄이라 이름짓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회동리(檜洞里)

    조선시대에는 서하면(西下面)에 속했으나 행정구역 개편 때에 서면에 편입되었고 다시 1924년 정선면에 합병되어 정선읍 관내가 되었다. 전나무가 많아 회동리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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